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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강 목사 성탄 설교] 임마누엘의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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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강 목사 성탄 설교] 임마누엘의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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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 1:18-23)

1. 우리는 오늘 지금부터 2천 10 여 년 전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날을 기념하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우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상하고 신비한 방식을 주목하며,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깊이 생각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일을 소상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것을 몇 가지로 나누어 생각하여 보겠습니다.

(1) 우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의 천사가 마리아의 남편 요셉에게 꿈으로 알려 주셨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우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죄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여 지옥형벌을 당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 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그것이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이었고, 그 뜻대로 예수님은 보내심을 받아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일을 통하여 두 가지의 사실을 반드시 함께 생각하여야 합니다.

죄 – 하나님을 어기고 불순종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죄가 얼마나 나쁘고 무섭고 비참한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그 대가를 치르게 만듭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과 진노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하나님 앞에 자기가 죄인인줄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심판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기 마음과 육체의 욕심대로 삽니다.

무엇이 옳고 참되고 아름답고 착한 것인가를 연구하여 그것을 하려고 애를 써야 마땅합니다.
사람이 만일 그렇게만 산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사도 바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롬 2: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마다 한 일을 따라 갚으신다는 것입니다. 만일 착하고 옳고 참된 일을 하면 그에 따라서 상을 주시고, 반면에 나쁘고 거짓되고 더러운 일을 하면 그에 따라 벌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착하고 옳고 참된 것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상을 주시는가요?
롬 2: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롬 2:8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 사람이 죽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지옥불에 떨어져 영원토록 고통을 당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스스로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여 영생을 얻을 자가 있습니까?
아닙니다.

“기록된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 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 3:10-1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지었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다.”(롬 3:23)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모든 사람이 마땅히 죽어서 지옥에 들어가서 영원토록 형벌과 고통을 당해야 마땅합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 백성들이 남들 보다 더 착하고 더 옳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도 모두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이 가득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넘치시는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사랑하시었습니다. 그래서 그 죄에서 그들을 구원하실 뜻을 세우셨습니다. 그래서 그 뜻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 예수님을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태어나심과 자라나심과 이 땅에서 살아가심, 그리고 나중에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다시 사신 그 모든 것은 다 우리의 구원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는 자는 죄에서 구원을 받습니다. 물론 그 말은 예수님 밖에서는 아무도 구원을 받을 자가 없다는 말도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리 태어나시어 자라서 나중에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다시 사시고 하늘에 올라가시지 않고는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없었는가?

하나님께서는 능력이 많으시어 아무 것도 없는 것에서 하늘과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지으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일도 그렇게 하셨으면 되지 않았을까요? 또 하나님 보다 높으신 분이 없으시니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시든지 무어라 할 지가 없겠으니, 그냥 죄를 용서하시고 죄를 안 지은 것으로 하시면 되지 않았나?

반드시 그렇게 하셔야만 되지 않았나? 그리고 하나님께는 힘센 천사들이 많고 많으니 그 천사들을 보냈어도 되지 않았나? 그럴 수 없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와 같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를 구원하시는 주님이 되시기 위하여 사람으로 태어나신 것입니다.

사람을 구원하는 구주는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태어나심으로 하나님도 되시고 사람도 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사람이므로 우리 사람 대신 죄를 지실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또한 하나님이심으로 그 무한하신 능력으로 모든 믿는 자들을 다 구원하시기에 능하셨습니다.

마치 해가 뜨면 그 햇빛을 아무리 많은 사람이 쐬인다 하여도 햇빛 양이 줄어들지 않고 다 같이 같은 분량의 햋빛을 누릴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다 예수님은 구원하시는 구주십니다.

(2) 사람이 태어나려면 먼저 어머니의 태에 잉태되어야 합니다. 예수님도 그러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잉태되셨습니다.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어째서 그렇게 하셨나요? 그렇게 하셔야 원죄(原罪)가 없습니다. 원죄는 아담이 지은 죄인데, 그 죄가 아담의 모든 자손들이 태어날 때부터 미치었습니다. 그래서 누구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이미 죄를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것이 원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잉태되셨기에 나면서도 죄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으셨습니다. 어머니 마리아가 죄가 없어서 예수님께서 원죄 없으신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으로 잉태되시어 원죄가 없으신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셨다면, 예수님은 우리의 구주가 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그럴 경우에 예수님의 죽으심은 예수님 자신의 죄 때문에 죽은 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시어 원죄가 없었고, 또 사시면서 한 반도 죄를 지으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의를 이루였습니다.
스스로 절대적인 의인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그 의인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 하였는데, 우리 예수님께서 죽으신 것은 분명 죄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 자신의 죄 때문이었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원죄도 없으시고, 스스로 지으신 죄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죽으심은 예수님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저와 여러분 모두의 죄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그래서 죄가 많은 우리도 예수님이 대신 피 흘려 죽으신 공력 때문에 우리 죄 모두가 용서를 받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의를 힘입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습니다. 곧 마치 우리 자신이 완전하게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을 완전하게 지키어 한 번도 죄를 지은 것이 없는 사람 같이 하나님께서 여겨 주신다 함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것을 우리의 것으로 여겨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것은 예수님의 것인 양 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셨고, 예수님의 것은 우리의 것인양 하시어 우리를 의롭다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힘입어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영원한 용서를 받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어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상속자들이 되었습니다.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롬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3) 그래서 예수님 안에서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막혀 있던 장벽이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내었던 높고 큰 장벽은 죄였는데, 그 죄가 예수님 안에서 처리되었으니,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 막고 있는 것이 다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을 때에 성전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졌습니다.
 
이전에는 아무나 하나님의 지성소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휘장이 쳐져 있어 아무도 휘장을 열고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오직 대제사장만이 일 년에 한 번씩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죽으셨을 때에 그 성전의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찢어졌습니다.

이제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께 나아갈 길이 뚫린 것입니다.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힘입어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엡 3:2)

그러므로 이제 우리와 하나님 사이는 원수관계가 아니라 화평한 관계입니다. 예수님 밖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냥 임하시면 우리는 멸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생명의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께서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담대하게 나오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시는 하나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우리 안에서 계시는 하나님이 되신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임마누엘의 영으로 우리 안에 계십니다.

1:22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우리 주님의 별명입니다. 우리는 이제 우리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영예를 얻었습니다. ‘우리가 은혜 받는다.’함은 바로 그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영광’의 은택 속에 거한다 함입니다.

2. 우리 주님의 성탄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도, 그 사랑은 그저 마음의 정서만을 건드리는 그런 사랑이 아닙니다.

사실적이고 실제적인 영원한 영광에 관한 것입니다. 기독교는 사실적입니다. 기독교는 그저 우리 심리적으로 마음에 평안을 끼치고 정서의 느낌만을 주는 차원정도가 아닙니다. 마음의 평안과 기쁨의 정서가 깊이 자리잡고 있으려면, 단순한 감정의 일렁거림 정도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세상의 문학작품들을 보면 사람의 정서와 느낌과 감정의 문제로 채색하여 놓았습니다. 세상의 시인들의 명시들을 보면 그 속에 인간의 여러 희노애락과 그에 따른 정서와 느낌을 말로 표현하여 놓았습니다. 그러나 사실적으로 따져 보면 인간의 진정한 문제를 알지 못하고, 또 해법도 없습니다.

어느 시인의 ‘푸르른 날’이란 시를 보았습니다.

‘눈이 부시게 푸르는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드는데
눈이 내리면 어이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땅과 계절과 환경과 그 속에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는 정서가 아름답게 채색된 시입니다. 한 폭의 그림과 같습니다.

이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그리움의 정서가 속 깊이 배어 있는 시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 땅에 사는 인생들 사이의 그리움이 아름다우나 덧없고 슬프고 절망적입니다. 그 인생의 허무가 배어 있습니다. 모든 날이 다 가고 황혼의 쓸쓸함과 죽음의 피할 수 없는 현실을 미리 내다 보면서 슬퍼지는데, 그 애조를 현재 ‘푸르른 날’봄과 여름과 같은 날들 동안에 서로 그리워하는 사랑으로 매메우자는 시인의 문학적인 제안입니다.

그러나 그 땅을 주시고 그 땅에 아름다운 계절을 주시고, 그 속에 있는 것들을 아름답게 하시고, 죄로 인해 죽게 되어 있는 인생을 극복하고 영원한 생명과 영광을 주신 임마누엘 우리의 하나님은 없습니다. 성경은 놀라운 뜻을 가지고 우리를 위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 안에 계시는 하나님께 집중하고 있습니다.

사실적으로 우리와 창조주 하나님 사이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 지금과 앞으로와 영원한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고 대처하게 하셨습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으로 오신 우리 주님의 성탄의 참된 의미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어 ‘지금부터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에 있습니다.

그래서 시 23편에서 다윗은 3천년 전에 시로서 그 임마누엘의 영광 안에 거하는 자신의 행복을 노래하였습니다. 이 세상의 어느 시도 이 시를 능가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이 시를 읽을 때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참된 소망과 확신과 담대함과 기쁨의 무너지지 않는 이유를 발견합니다.

“23: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3:2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23: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23: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23:6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우리 주님 예수 임마누엘의 은택과 영광의 진리를 중심에 둔 신소망에 찬 신앙고백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 임마누엘의 복의 말씀을 듣고도 답답하고 아무 감흥이 없는 이는 아직도 거듭나지 못한 자입니다.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입니다.

요한계시록 마지막 부분으로 나아갈수록 우리와 하나님의 친밀함에 초점이 더해지고 있습니다.

“계 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1: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21: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1: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 모친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19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1: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1:22 이 모든 일의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가라사대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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