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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 하나님 중심, 룻기서의 구속사적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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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논단

삼위 하나님 중심, 룻기서의 구속사적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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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룻기서는 구약성경에 포함된 하나님의 말씀이다룻이라는 이방 여인과 유다인 보아스가 결혼하여 오벳을 낳았다그 오벳이 바로 다윗의 조부요이새의 아버지였다오벳(עוֹבֵד)이란 이름은 섬기는 자(예배자)’란 의미이다에스더서는 유다인 가운데 에스더라는 여인을 중심으로 기록되었다면, 룻기서는 이방인 룻이라는 여인을 중심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다윗의 조부인 오벳이 태어나기까지 극적인 이야기가 룻기서에 펼쳐진다. 그 극적인 이야기는 유다 땅에 살던 유다인 중 엘리멜렉과 그 아내 나오미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그 부부에게 두 아들인 말론과 기룐이 있었다. 룻기서는 이렇게 시작한다.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에 가서 거류하였는데.”(룻 1:1)

 

룻기서는 의도된 목적인 보아스와 결혼할 룻이라는 여인을 위한 이야기로 시작하여 전개된다. 이 이야기를 위해 엘리멜렉과 나오미라는 한 가족의 이야기가 동원된다. 그 가족이 흉년을 피해 모압 땅으로 내려간다. 모압은 언약 밖의 사람들이 사는 땅이다. 룻기서 저자는 독자들에게 룻기서를 시작하면서 예루살렘 흉년 이야기와 더불어 엘리멜렉 가족이 모압으로 내려간 사건으로 그림을 그린다. 이 사건은 특별한 룻기서의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독자들은 이 사건을 통해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에 관심을 두기에 충분하다. 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다양한 사건을 접하게 된다. 분명한 것은 성경에 기록된 다양한 사건은 그 사건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즉 그 사건을 알려주기 위한 목적으로 성경이 기록된 것은 아니다. 그 사건을 통한 하나님 계시, 즉 하나님의 의도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이다. 사건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를 말하지 않고는 그 사건을 바르게 이해했다고 볼 수 없다.

 

룻기서 초반부에서 보여준 이 사건의 의도된 목적은 다음 두 가지로 말 할 수 있다. 첫째는 모압에서 나오미의 남편과 두 아들이 죽는 일이요, 둘째는 죽은 아들의 남편이었던 룻이라는 모압 여인을 며느리로 얻는 일이다. 룻기서 저자는 이 두 사건을 룻기서의 의도된 목적을 위해 활용하고 있다.

 

그 핵심적인 이야기는 모압 여인 룻을 예루살렘에 사는 보아스와 연결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이 룻기서에서 확인해야 하는 중요한 포인트이다. 이 일이 그토록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의 언약과 구속이 중단되지 않고 계속 이어지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속 계시 때문이다.

 

모 앞 땅에 방문하여 완전히 망해버린 나오미를 따라 유다 땅 예루살렘에 따라온 모압여인 룻이 있었다. 이 룻은 나오미의 남편인 엘리멜렉의 가문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 이를 위해 당시 독특한 문화인 ‘기업무를 자(고엘)’를 통해 가능한 일이었다. 이 기업무를 자란 룻을 보아스와 연결하는 방편으로 동원된다. 기업무를 자인 고엘 제도가 룻기에서는 의도된 목적을 이루기 위해 동원된다. 이는 곧 보아스와 룻을 맺어주기 위한 수단이 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룻기서의 의도된 핵심 내용이 왜, 무엇 때문에 보아스와 룻에게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는 룻기서가 기록된 배경인 사사시대 이전인 창세기에서부터 이후 신약 성경에 이르기까지 예수 그리스도와 어떤 관계에 있는가? 더 정확히 표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 이와 같은 답변은 성경신학에서 신구약 성경의 ‘유기적 통일성’이라 주제로 다룬다.

 

창세기에서부터 발아된 하나님의 자기계시의 씨앗이 점진적인 발전을 통해 요한계시록까지 이어지고 있다. 룻기서는 룻기에서만 안주하여 해석하고 설명하면 안 된다. 룻기서 이야기는 신구약 성경 전체의 흐름 속에서 살펴야 한다. 즉 신구약 성경 전체 중에서 한 부분인 룻기서를 다루어야 한다. 이는 하나님의 계시인 언약을 통한 하나님의 구속역사, 구속 경륜을 이해하는데 결정적 요인이 된다.

 

룻기에서 보아스가 룻과 결혼하기 전에 결혼했는지 결혼을 했다면 아들이 있었는지는 침묵하고 있다. 아들이 있다는 기록이 없다. 룻기서 저자는 아들이 없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마치 히스기야가 15년 생명 연장을 받기 전에 아들을 언급하지 않고 이 기간에 아들 므낫세를 낳아 정통성을 잇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보아스의 어머니는 라합이다. 여호수아 시대에 언급된 기생 라합이다. 여호수아에서 기생 라합의 믿음과 그를 부르시고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총에 관해 자세하게 기록된다. 그러나 그가 누구와 결혼을 하였는가? 그리고 그가 낳은 아들은 누구인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지 않다. 여호수아서와 룻기서에는 이러한 기록이 전혀 없다. 그러나 신약성경 마태복음의 예수님의 족보에서 보아스의 어머니가 라합이라고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마 1:5-6)

 

기생이었던 라합의 남편이 살몬이었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보아스의 아버지는 살몬이고 그의 어머니는 라합인 셈이다. 이 보아스는 다윗의 고조할아버지가 된다. 결국 이 족보는 예수님의 족보이다. 이 이야기는 룻기에서 왜 보아스와 룻의 이야기가 강조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이것이 바로 룻기에서 보여준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역사이다.

 

그렇다면 이제 룻기에서 어떻게 보아스와 룻이 관계를 맺게 되는지 룻기서의 재판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보아스가 성문으로 올라가서 거기 앉아 있더니 마침 보아스가 말하던 기업 무를 자가 지나가는지라 보아스가 그에게 이르되 아무개여 이리로 와서 앉으라 하니 그가 와서 앉으매.”(룻기 4:1)

 

여기 보면 “보아스가 성문으로 올라가서 거기 앉아 있더니”라고 말한다. 고대의 성문 어귀에는 대체로 넓은 장소로 이곳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이다. 이곳은 성읍의 대표들, 특히 장로들이 백성들을 만나고 율법상의 판결을 내리던 곳으로 이용되던 장소였다(신 21:19, 수 20:4). 성읍의 유력한 자만이 성문 어귀에 있는 의자에 앉을 수 있었다. 이처럼 성문은 성읍 백성들에게 있어서 사회·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따라서 보아스가 성문에 올라갔다는 사실은 그 성읍의 장로들에게 율법상의 판결을 받기 위함이 틀림없다.

 

보아스가 성문에 올라가 앉아 있을 때, ‘마침’ “보아스가 말하던 기업 무를 자”가 지나갔다. 여기 '마침'이란 히브리어로 ‘힌네’인데, ‘보라’, ‘자’, ‘드디어’라는 의미가 있다. 드리어 첫 번째 고엘이 광장을 가로질러 보아스가 앉아 있는 곳으로 왔다. 이 사람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고 ‘아무개여’라고 말한다. 그 사람이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룻의 미래가 결정된다. 보아스는 재판을 위해 예루살렘 장로 10명을 불렀다.

 

“보아스가 그 성읍 장로 열 명을 청하여 이르되 당신들은 여기 앉으라 하니 그들이 앉으매.”(룻 4:2)

 

보아스는 장로 10인을 불러 각자 앉을 자리를 배정하여 준다. 이 재판은 엘리멜렉 집안을 책임질 고엘을 선정하는 재판이었다. 재판 안건은 4:3절에 기록된다.

 

“보아스가 그 기업 무를 자에게 이르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나오미가 우리 형제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팔려 하므로.”(룻 4:3)

 

보아스는 재판을 시작한다. 첫 번째 고엘에게 모압 지방에서 돌아온 나오미가 우리 형제 엘리멜렉의 소유지를 팔려 하므로 레위기 25:23-28절에 따라 엘리멜렉의 유가족을 위해 첫 번째 고엘에게 그 땅값을 대신 지불해 주어야 하는 책임이 있다. 그 책임을 이행할 것인지를 묻고 있다.

 

그러나 4:4절에 의하면 “내가 무르리라 하는지라”라고 한다. 여기 히브리어 고엘이란 ‘되 사다, 속량하다, 구속하다, 근친의 역할을 행하다’라는 뜻인데 아무개는 고엘의 책임을 이행하지 않겠다는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밝힌다. 이미 보아스는 그 아무개에게 “당신이 책임을 지지 않으면, 내가 책임을 지겠다”라는 분명한 의사를 표명한다.

 

그러자 그 아무개는 자신은 책임을 지지 않겠다고 한다. 즉 첫째 고엘은 고엘 의무행사를 포기한다. 그러나 첫째 고엘 의무자가 자신의 의무행사를 포기하자 서열로 두 번째 고엘인 보아스가 고엘 의무행사를 이행한다.


고엘 의무를 양도받은 보아스는 이를 정확히 해 두기 위해 9절에 “보아스가 장로들과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산 일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고”라고 한다.

 

두 번째 안건을 위해 증인을 세운다. 10절에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맞이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 그의 이름이 그의 형제 중과 그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아니하게 함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느니라 하니.”라고 한다. 이제 보아스는 룻을 아내로 맞이하여 엘리멜렉의 데를 이어주는 고엘 의무행사에 증인을 내세우고 있다.


재산뿐만 아니라 대를 이어주기 위해 고엘 의무책임자로 보아스가 확정되어 대를 잇지 못하고 죽은 엘리멜렉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한 고엘 의무행사를 확정한다.

 

재판이 끝나자 이를 지켜본 사람들이 축복한다. 11절에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이르되 우리가 증인이 되나니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의 집을 세운 라헬과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네가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하게 하시기를 원하며”라고 한다.

 

12절에서는 보아스의 집이 베레스의 집과 같이 되기를 축복한다. 12절에 “여호와께서 이 젊은 여자로 말미암아 네게 상속자를 주사 네 집이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니라.”라고 한다. 베레스에 관해 설명하기를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아들이라고 한다. 다말과 유다의 관계 역시 ‘기업물을 자’인 ‘고엘’에 의해 베레스를 낳아 대를 잇는 것과 같은 개념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러한 고엘 제도를 통해 대를 잇게 하여 하나님께서 창세기에서부터 약속하신 그 약속이 이루어지게 하신다. 그 약속은 결국 하나님의 구속이며, 그 구속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속임을 알 수 있다. 결국 룻기서는 장차 오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 구속의 역사를 보여준 하나님의 말씀이다.

 

 

룻기서의 해석과 적용의 원리

 

화란에서 제기된 구속사 설교에서 적용은 별도의 독립된 주제가 아니었다. 본문을 구속사적으로 해석하면 자동으로, 즉 성령의 역사로 적용이 이루어진다는 논지였다. 구태여 본문을 구속사적으로 해석한 후 별도로 적용할 이유가 없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구속사 설교는 마치 신학 강의와 같다는 평가가 있어 왔다. 본문 해석과 적용을 이원론적으로 이해한 결과였다.

 

그러나 설교의 역사에서 본문 해석과 적용은 설교의 주요 요건이기도 했다. 본문을 해석할 때는 삼위 하나님 중심 개념을 활용하여야 한다. 그리고 본문의 전후 문맥 등을 통해 종합적으로 살핀 후 저자의 의도, 즉 본문을 통한 하나님 계시의 의도를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본문을 적용적으로 설명한 것이 먼저가 아니라 종합적으로 살펴서 본문을 통한 계시의 의도를 해설한 후 설교를 듣는 청중들에게 적용적으로 설명함은 물론 삶의 현장에 적용하며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설교가 본문 설명만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또란 적용중심적으로만 해서도 안 된다. 본문 설명과 적용을 균형있게 해야 한다.

 

룻기서 본문을 종합적으로 살핀 후 본문의 의도를 파악해야 한다. 더불어 신구약 성경의 유기적 통일성에 의한 삼위 하나님 중심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 이는 룻기서는 성경 66권 전체 가운데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설명 후 본문을 그리스도인의 삶에 적용할 때에 본문의 사건을 적용적으로 설명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런 형식논리에 따르면 룻기서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를 적용적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물론 전제는 본문을 종합적으로 설명한 후 이루어져야 한다. 본문의 의미 분석 없이 적용적 설명으로만 설교할 경우, 이는 한계가 있다. 이런 형식은 주로 큐티에서 이루어지는 방식이다. 그러나 설교는 이런 개념을 초월해야 한다.

 

하나님은 룻기서의 다양한 사건을 통해 구속의 역사를 진행해 가신다. 그러한 진행 과정에서 동원된 다양한 사건과 이야기들을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현장에 적용하는 것 역시 얼마든지 가능하다. 엘리멜렉의 한 가정이 예루살렘의 흉년을 피해 모압으로 내려간 사건, 그곳에서 가장과 두 아들이 죽는 사건 등을 통한 아기자기한 삶의 이야기를 설교를 듣는 청중들에게 적용적으로 설명하는 일 역시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들은 룻기서를 통한 하나님의 구속계시를 설명하기 위한 수단이어여 한다. 신학교 강의실에서 구속에 관한 신학적 강의와 같은 설교를 한다면 이 역시 한계가 있다. 룻기서에서 강조한 하나님 계시의 핵심적 진리를 설명할 때 본문 사건과 모범적 행위들을 통해 설명하면서 적용하는 일은 구속사적 설교에서 매우 중요한 전제 요건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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