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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강론(37) 하나님 영의 표징(고전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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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칼럼

고전 강론(37) 하나님 영의 표징(고전 12:1-3)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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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고전 12:1-3

 

[1]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2]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

[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지난 시간에 고린도전서 11:27-34절 말씀을 통해 합당치 않게 성찬에 참여하는 자라는 제목으로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성찬식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찬식이 거룩한 의식인 이유는 그것이 거룩한 복음의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찬식은 거룩하게 행해져야 합니다. “합당하지 않게참여한 자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대한 구속 진리와 구속 계시의 내용을 담고 있는 성찬을 왜곡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만찬에 참여하는 자들은 무례한 태도로 참여하거나, 다른 목적으로 참여해서는 안 됩니다. 잘못된 의도와 목적으로 성만찬에 참여한 자들은 주님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습니다. 성찬에 참여한 자들은 먼저 자기를 살피라라고 말씀합니다. 성찬식에 참여한 자들은 성만찬에 대한 본래의 목적과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고 이를 믿고 참여해야 합니다. 결국 자신을 시험하는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에 대한 올바른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문제입니다.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하여,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를 피하려고, 자신을 살피면 판단을 받지 않기 위하여 성찬의 의미를 알고 참여해야 합니다. 올바른 성찬식은 모두 모여 같이 식사하기 위해 기다려야 하고, 부자들 배고파서 가난한 자들이 교회에 도착하여 함께 식사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거룩한 성만찬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의 십자가를 기념하며 이를 전해야 합니다.

 

이번에는 본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 영의 표징이라는 제목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영인 성령의 역사를 증명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인지 본문 말씀을 통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질문과 답변

 

1.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성령의 은사에 관한 질문(1)

 

본문 1절 말씀에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라고 합니다. 여기 신령한 것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는 이미 고린도전서 17:1절에서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 말하면이라고 합니다.

 

여기 너희가 쓴 문제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미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바울에게 교회의 여러 가지 문제에 관해서 질의를 했습니다. 바울은 그 질의에 대해 고린도전서를 통해서 답변하고 있습니다. 특히 신령한 문제인 성령의 은사에 대한 문제를 이제 언급하면서 12장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이 받은 성령의 은사를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즉 긍지가 대단했습니다. 그 긍지가 지나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자신이 가진 소중한 가치가 있다면 그것으로 보람을 느끼고 긍지를 갖는 것은 당연하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긍지가 잘못된 판단에 의한 것이라면 문제가 됩니다. 그 긍지는 오히려 하나 된 공동체를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자신들이 받은 성령의 은사를 예배 때에 경쟁적으로 과시합니다. 자랑합니다. 자신이 받은 성령의 은사와 다른 사람이 받은 성령의 은사를 비교하여 자신이 받은 성령의 은사에 대한 우월성을 과시합니다. 그래서 예배가 무질서를 조장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 성령의 은사를 언급하면서 가르칩니다. 그 성령의 은사를 말하기 전에 먼저 본문인 1~3절에서 성령의 진정한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고백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를 근거로 성령의 은사들에 대한 올바른 인식의 기초를 제공합니다. 이를 기초로 하여 12:4-11절에서는 한 분이신 성령의 다양한 은사들, 그리고 12:12-23절에서는 한 몸의 다양한 지체들에 관해 설명합니다. 이어서 13장에서는 성령의 가장 고귀한 은사로 사랑을 언급합니다. 모든 은사는 교회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세우는 데 있음을 말씀합니다.

 

본문 1절에서 바울은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라고 합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우리는 이러한 신령한 은사를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바른 성경적 지식은 우리들의 올바른 태도와 자세, 행동을 낳게 합니다. 실천적 행동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생각과 이해를 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언어와 행위는 그 사람 마음의 표현입니다. 마음으로 신령한 것에 대해 어떤 생각과 이해하고 있느냐에 따라 그 행위의 결과는 달라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신령한 것에 대한 바른 이해와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이러한 바른 지식에 대해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라고 말씀합니다. 바른 진리로 무장하지 아니하면 사단의 유혹에 쉽게 빠질 수 있는 점도 유의해야 합니다.

 

착각

 

2. 잘못된 우상에 빠진 황홀경을 은사로 착각(2)

 

본문 2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신령한 것들에 관해 말하기 전에 잘못된 견해를 언급한 내용입니다. 마치 은사를 거짓 신인 이방인들이 우상으로 인한 영적 황홀경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지역을 포함한 헬라 세계에서 신이 내리면 영적인 황홀경 상태가 된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영적 황홀경을 높이 평가했으며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없는 영적 가치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그 영적 황홀경은 언제나 자랑거리가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우위로 삼았습니다. 이러한 가치관과 영적 세계관을 가진 고린도인들이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는 그런 이방인의 우상으로 인한 영적 황홀경과 같은 현상은 교회 안에서 인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 안에서 이런 영적 황홀경이 인정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세상에서 우상을 섬기는 방법으로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려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고린도 교회 안에는 혼란이 찾아왔습니다. 예배가 무질서해졌습니다. 신앙에 대한 질서 역시 무질서해졌습니다. 이방 신을 통한 영적 황홀경이 성령의 은사로 둔갑 당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에 대해 바르게 진단하고 바른 성경적 신령한 영적 은사들에 관해 가르칩니다. 그래서 그는 우상은 인간이 나무를 쪼아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그 우상은 생명이 없습니다. 아무런 활동도 못 하는 벙어리 우상일 뿐입니다. 시편 115:5절에 그들의 신들은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사야 46:7절에그것을 들어 어깨에 메어다가 그의 처소에 두면 그것이 서 있고 거기에서 능히 움직이지 못하며 그에게 부르짖어도 능히 응답하지 못하며 고난에서 구하여 내지도 못하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그 우상은 그것을 어깨에 메어다가 일정한 곳에 둡니다. 그 우상은 제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못합니다. 사람이 기도하여도 응답해 주지 못합니다. 환난에서 구해 주지 못합니다.

 

문제는 사탄의 하수인인 귀신이 인간들의 우상숭배를 이용하여 그들을 황홀경에 빠뜨리게 합니다. 혼란과 무질서를 가져옵니다. 죄악을 조장합니다. 고린도 전서 10:20절에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라는 말씀에서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이방인들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입니다. 그 제사는 하나님에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귀신들과 사귀는 것을 금했습니다.

 

특히 본문에서는 영적 황홀경이 그 귀신들의 영향이라는 사실을 배제할 수 없음을 언급합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전에는 마치 이런 귀신의 지배 아래에 있었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기준

 

3. 성령의 역사로 인한 신령한 은사(3)

 

바울은 본문 3절에서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라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 것이 진정한 성령의 역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영의 역사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게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한다는 것은 성령께서 역사해 주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배 때에, 혹은 일반적으로 영적 황홀경에 빠지는 것만으로는 하나님의 영인 성령이 역사했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없습니다.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과거에 믿기 이전, 우상숭배 시절에 했던 영적 체험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황홀경으로는 성령의 역사라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합니다. 오직 진정한 성령의 역사는 예수가 주이시다라는 고백으로 나타납니다. 이런 고백은 성령의 역사에 대한 표징입니다.

 

이 고백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대신하고 우리 모두를 대표하여 하나님 약속의 말씀대로 십자가에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하나님께 구원받은 유일한 길임을 믿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성령의 역사에 대한 표징은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아들이라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이러한 고백은 구원을 얻게 하는 고백입니다. 로마서 10:9절에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백은 바울이 고린도전서 초반부에서 언급한 대로 세상의 지혜로는 불가능합니다. 오로지 성령이 사람들의 영적 눈을 뜨게 하여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를, 복음을 깨닫도록 합니다. 이런 역사로 하나님의 택한 자녀들에게 고백하게 합니다.

 

결국 본문에서 사도가 언급한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라고 했던 것입니다.

 

4. 교훈과 적용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에 많은 사람은 예수가 자신의 죄 때문에 저주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저주는 나와 우리 모든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저주를 받아 죽으셨습니다. 이 죽음을 대속의 죽음이라고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3:13)

 

성령의 역사, 혹은 성령의 사역에 대한 올바른 개념 이해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신앙의 혼란이 없습니다. 이단에게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1) 라고 말씀했던 것입니다.

 

수 그리스도를 나의 생명의 구주로 고백한 자들에게 성령께서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2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