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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6장 강론5] 로마서 마지막 송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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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칼럼

[로마서 16장 강론5] 로마서 마지막 송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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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6:24-27

24 절(없음) 25절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사본

 

1. 사본상의 문제, 24절 없음

 

로마서 16:24절 없음.

어떤 사본에, 24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모든 이에게 있을지어다 아멘”이 있다. 로마서는 다른 성경과 같이 원본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원본을 대필하는 사본들이 존재한다. 그 사본에 사본이 있을 것이다. 즉 원본에서 대필한 후 대필 된 글을 다시 대필하는 사본이 존재할 수 있다. 원본에서 대필한 글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일 수 있다. 문제는 한 원본에서 대필한 사본이라면 사본 모두가 같아야 한다. 그런데 일부가 다른 경우가 있다. 어떤 사본에는 있고 어떤 사본에는 없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어떤 사본에는 24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모든 이에게 있을지어다 아멘”이라는 본문이 있다.

 

이런 사본상의 문제로 요한복음 7:53-8:11절을 참조할 수 있다. 이 본문은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인 여인의 이야기인데 이 사건 본문은 괄호[ ]로 묶어져 있다.


[다 각각 집으로 돌아가고 예수는 감람산으로 가시니라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그들을 가르치시더니 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위의 부분은 사본상의 문제가 되는 본문이다. 그래서 괄호로 묶어져 있다. 다음은 마가복음 16:9-20절까지의 본문도 괄호[ ]로 묶어져 있다. 이 본문 역사 사본상의 문제가 있는 본문이다. 이 본문들은 성경 전체의 통일성에 의해 문제가 되지 않는 본문으로 한글 개역 개정판에서는 본문에 포함하고 있다. 대신 괄호[ ]로 묶어져 있다.


신비(비밀)

 

2. 영세 전부터 감춰졌던 복음(25)

 

본문 25절에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라고 한다. 여기서 ‘나의 복음’,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라고 한다.


첫째, 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선포

 

바울은 복음을 선포했다. 그 복음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롬 1:1-4). 사도는 로마서 서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함을 받았다. 바울의 생애와 사명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다. 그 복음은 하나님의 복음이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복음이었다. 이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내용으로 하고 있는데 그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 성경에 미리 약속해 주셨다. 그 약속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었다. 바울은 이 복음을 선포하였다. 


둘째, 영세 전부터 감추인 신비(비밀)의 계시였다.

 

창세기 1:1절은 태조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한다. 여기서 태초란 시간 세계의 시작을 의미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감추어졌던 자신을 드러내어 보여주셨다. 이것이 계시이다. 계시 이전에는 감추어졌다. 그래서 본문은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라고 말한다.

 

고린도전서 2:7절에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라고 했다. 에베소서 1:9절에서는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라고 한다. 

 

복음의 내용이 오랫동안 ‘감추인’ 비밀이었다. 감추인 이 비밀은 ‘침묵하다’, ‘잠잠하다’라는 의미로 ‘감추다, 비밀로 간직하다’를 뜻한다. 비밀 개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되고 그의 사도들에 의해서 선포되는 복음의 내용에만 연관되어 등장한다. 그런데 이 ‘비밀 계시’나 ‘신비의 계시’라는 술어는 특별히 한국의 기독교 이단들과 사이비 종파들이 선호한 술어이다. 그들은 영원 전에 감추인 계시가 오직 자신들의 지도자나 교주에게 임했다고 주장하여 신적 권위를 내세우는 방편으로 사용한다. 자신들만이 비밀의 계시를 풀었다고 한다. 모두가 거짓 진리에 의한 이단적 사상들이다.


드러난 계시

 

3. 이제는 신비의 계시가 드러나다(26).

 

본문 26절에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이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알게 하신바 그 신비의 계시를 따라 된 것이니 이 복음으로 너희를 능히 견고하게 하실”이라고 한다.

 

사도 바울은 신비(비밀)의 계시가 ‘전에는’ 감추어졌으나 ‘이제는’ 계시되었다고 한다. 계시 이전의 감추어진 상황(25)과 이제는 드러났다. ‘그 신비의 계시’는 ①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②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따라’ ③ ‘믿어 순종하게 하시려고’ ④ ‘모든 민족’을 위하여 알려진 것이다.

 

첫째, ‘그 신비(비밀)의 계시’는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나타나고 알려진 것이다. 둘째, ‘그 신비(비밀)의 계시’는 ‘영원하신 하나님을 명을 좇아 알려진 것이다. 셋째, ‘그 신비(비밀)의 계시’는 ‘모든 이방인들을 위하여’ 알려진 것이다. 또한 그 이방인들에게 ‘믿어 순종케 하기 위하여’ 계시된 것이다.

이러한 신비(비밀) 계시의 대상은 ‘모든 이방인들’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들이 ‘믿어 순종케 하려는’ 것임을 말해준다.


하나님 영광

 

4. 마지막 축원(27)

 

첫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지혜로운 하나님께 영광

 

본문 27절은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 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이라고 한다.

 

사도는 이제 로마서를 마무리, 즉 끝내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로마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축복하고 있다. 즉 기원 형식을 덧붙인다. 사도는 하나님을 ‘지혜로우신 하나님’이라고 한다. 하나님의 이 지혜로운 이방인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되고 성취되고 있다. 따라서 사도는 이러한 구원에 관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께 유일하시며,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우리들의 이름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에 접근할 수 없다. 오직 그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에 접근하며, 그 영광을 찬양할 수 있다. 여기에 우리는 모두 '아멘' 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과 복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복들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따라서 설교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어떠한 구원도, 사랑도, 기도 응답도 주신 일이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일들은 결국은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하다. 내 능력으로 이러한 진리에로 접근한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의 나타남, 능력으로 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삼위일체 하나님 중심으로 성경을 리딩해야 한다. 그리고 묵상하고 설교해야 한다.


둘째, 아멘의 생활

 

보편적으로 권위의 주장에 대한 형식논리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주장이 곧 권위의 근거로 말씀하셨다. 이것이 바로 아멘(Amen)이라는 단어이다. 우리나 유대인들은 기도나 찬송 또는 설교 끝에 자기도 진실로 그 내용과 같이 되기를 원한다는 뜻으로 '아멘'을 사용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식으로 '아멘'을 사용하지 않았다. 정 반대 개념으로 사용하셨다.

 

복음서에 의하면 예수님은 ‘진실로 진실로’라고 하시면서 말씀을 하셨다. 이는 ‘아멘 아멘’이라는 말이다. 예수님이 이같이 ‘아멘 아멘’ 하신 말씀 속에는 예수님의 권위 주장이 내포되어 있다. 이러한 말씀을 통해 예수님은 자신의 권위로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선포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수님의 말씀 선포 형식을 보면 ‘아멘 아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라고 하시면서 말씀을 선포한다. 그 선포된 말씀에 대한 권위의 근거는 자신이라고 주장한다. 즉 이 말씀이 권위가 있는 것은 자신이 보장한 것이기에 권위가 있다는 말씀이다(kittel, 신약 성서 신학 사전, Joachim Jeremias의 신약신학 참조).

 

성경은 신적 권위를 갖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므로 하나님의 권위와 일치한다. 성경 내용의 진술에 의해 사람의 생명과 죽음이 결정된다. 성경 자체가 진리이므로 성경이 말한 대로 믿음이 생명과 죽음이 결정되는 것을 말한다. 성경의 신적 특성과 권위는 성령의 증거를 경험할 수 있는 신자에 의해서만 인식된다. 

 

다른 증거들은 성경의 권위를 변호하고 확증하는 외적인 것일 뿐이다. 그렇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된 권위와 권세가 있는 것은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능력으로 인식하고 믿기 때문에 그것이 곧 우리에게 생명이며, 희망이다. 우리는 이를 인정한다는 의미에서 '아멘' 한다.

 

예수님의 아멘은 자신이 권위의 주체 및 근거임을 암시하기 위해 먼저 '아멘' 하고 진리를 선포한다. 그러나 우리는 선포된 하나님의 진리 앞에 '아멘' 한다. 그 진리와 복음에 순응하고 순정하겠다는 신앙 고백적 표현이 아멘 이다. 


교훈과 적용

 

우리는 그동안 로마서를 살펴보았다. 로마서는 읽기만 읽어도 은혜가 된다. 그러나 읽는 말씀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늘 고민이 되었다. 사람들은 성경 본문을 읽고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며 본문에 의미를 부여하여 나름대로 해석한다. 해석된 의미를 나의 삶의 현장에 적용한다. 그런데 해석된 본문의 의미가 왜곡될 때 삶의 실천도 왜곡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도 바울은 그동안 긴 로마서를 편지 형식을 작성하면서 본문 말씀으로 마무리한다. 물론 본문에 대한 사본학에서 문제가 되기도 한다. 사본상 어떤 사본에는 본문이 있는가 하면 어떤 본문에는 없다. 그러나 본문인 25-27절 말씀이 로마서에 속한 본래의 본문이라고 본다. 

 

사도 바울은 나의 복음이라고 한다. 이 나의 복음은 바울이 전한 복음이라는 의미이다. 바울 사도가 이방인 중에서 선포하는 복음이다. 이를 나의 복음이라 한다. 바울이 전한 복음은 창조 이전부터 감추어졌었다. 그러나 때가 차매 감추어진 신비(비밀)의 계시와 복음이 드러났다. 이 복음이 우리를 견고하게 한다.

 

사도가 전한 복음의 진리인 하나님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졌다. 이 사실은 우리는 쉽게 받아들이지만, 바울 당시 이러한 복음 선포는 위협을 받으면서 전했다. 유대인들은 이러한 복음을 거부한다. 자신들의 유일신론에 배치된다며 거부했다. 적극적으로 핍박을 가했다. 바울은 이러한 위협을 감수해야 했다. 이러한 위협이 두려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나의 복음’을 포기할 수 없었다. 사도는 ‘우리의 복음’이라 하지 않고 ‘나의 복음’이라는 한 것은 이런 사역의 현장 경험의 핍박 중에서 온 신앙 고백적 표현이다.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 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27)

 

(위 내용은 지적 소유권에 의해 보호되는 글입니다) 

 

소재열 목사(새사랑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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