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토)
“우리는 부활절에 여기 왔습니다. 그 날 죽음의 창살들을 꺾으신 주께서 이 백성을 얽어맨 결박들을 끊으시고, 그들을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릴 빛과 자유 속으로 인도해 주소서”
“We came here on Easter, May He who on that day burst asunder the bars of death. break the bands that bind this people and bring them to the light and liberty of God’s children.”
복음을 전하기 위해 이 땅을 찾았던 미국인 선교사 아펜젤 러가 1885년 4월 5일 제물포에 처음 도착하면서 하나님께 드린 기도문이다.
124년 전 부슬비 내리던 부활주일 오후 3시, 미국인 북장로회 선교사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 1859~1916)와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Henry G. Appenzeller, 1858-1902) 부부와 가 제물포에 도착했다. 오랜 기간 흑암에 덮여 있던 조선 땅에 비로소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의 빛이 비취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이보다 1년 전, 일본에 파송된 미국인 선교사 매클레이는 개화파 김옥균을 통해 고종황제에게 조선에서의 개신교의 선교 가능성을 타진한다.
그러나 고종황제는 교육과 의료에 대해서만 윤허(允許)하고 선교활동은 허락하지 않았다. 소식을 듣게 된 미국 감리교 선교부는 조선에서의 외국인 활동이 가능하다는 판단에 선교사를 파송하기로 결정한다. 1884년 10월, 의사이며 목사인 윌리엄 스크랜턴(William B. cranton, 1856-1922)과 아펜젤러 부부, 여성 교육과 선교를 위해 스크랜턴의 어머니 메어리 스크랜턴(Mary F. Scranton, 1832-1909)을 감리교 선교사로 파송했다.
1885년 2월 3일 태평양을 가로지르는 우편선 아라빅 호를 타고 샌프란시스코를 출발한 이들은 2월 27일 일본 요코하마 항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조선 선교 책임자인 매클레이와 함께 선교전략을 논의한 결과 여러 명의 선교사들을 동시에 조선에 보낼 경우 의혹을 받을 수 있다는 판단으로 우선 아펜젤러 부부를 보내기로 한다. 3월 23일 요코하마 항에서 나고야 마루 아펜젤러 선교사 60 지구촌비전를 타고 출발한 아펜젤러 부부는 며칠 후 고베에서 승선한 장로교 선교사인 언더우드를 만난다. 그 외에도 이배에는 조선의 선교 가능성을 알아보려는 일본 주재 장로교 선교사 스쿠더(Scudder)와 테일러(Taylor)도 동승했다. 나가사키에서 배를 바꿔 탄 일행은 1885년 4월 1일 밤 부산항에 하룻밤을 머물다가 서해안을 따라 4월 5일 제물포에 도착한다.
언더우드 선교사님이 1885년 4월 5일 인천 제물포항에 도착하여 조선에 첫발을 내 디딘 날은 부활절 아침이었다. 부활의 아침에 인천 제물포항에 내리면서 자신의 마음을 하나의 기도문으로 적었다. 읽을 때마다 감동이되고 캄캄해서 도무지 볼 수 없는 조선의 미래를 믿음의 눈으로 기대하며 바라보았던 선교사님의 마음이 와 닿는 것 같아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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